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기도중에 본 교회에서는 지역 사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 선교를 시작키로 하였습니다. 주변에 매우 심각한 위기 에 처한 이웃이 있을 때 본 교회 신청서를 내시면 20만원의 도움을 드릴 수 있고, 추후 한 번 더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사역을 위해 본 교회에서는 그동안 드렸던 이삭줍기 헌금을 '선한 사마리아 선교 헌금'으로 이름을 바꾸고 매월 수입의 1%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이 일에 많은 교우들의 동참과 아울러 선한 사마리아선교회를 통해 힘겨웁게 살아가는 이웃에게 소망이 되며, 저희 대현교회를 통해서 지역사회가 좀 더 따뜻해질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설교문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역의 진행 순서
신청서 제출 ♥본당 뒤편에 신청서 서류가 있음 ♥첨부파일양식 다운로드 하여 이용 ♥작성한 신청서를 헌금함에나 교역자, 장로, 권사,안수집 사에게 주시면 섬김이가 바로 연락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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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이 배정 ♥선한사마리아섬김이 배정(안수집사, 권사) ♥선한사마리아 선교 보고서 작성하여 서기에게 접수 ♥선한사마리아선교보고서 양식은 친교실 새가족부 자료 비취함에 있음, 또는 첨부파일다운로드하여 이용 ♥보고서 작성하여 서기에게 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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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찾아가 도움을 베풂 ♥신청자와 함께 상의 하에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가 서 도움을 베풂 (현금보다 물품(쌀,연탄 등등)으로 할것) ♥최고 20만원 까지 도울 수 있고, 추후 한번더 20만원 더 지원할 수 있음(섬김이와 상의 할것)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할 것 |
※선한 사마리아 선교 임원 및 부원
부장:고원철장로 (010-8488-9070)
서기:박종현집사 (010-3845-4189)
회계:손인숙 집사
섬김이:장립집사-박종현, 이형철, 김춘석, 정용화 , 한공희, 김세
현 , 강진규, 김홍재, 강길수, 문영배, 정춘성, 이유복,
권 사-이봉연, 황순선, 임상순, 이무경, 한선희, 한은순 권사
☞궁굼한 사항은 부장과 서기에게 문의 바랍니다.
제목: 선한 사마리아 선교
성경:눅10:29-37 (2016. 9. 18. 주일 낮 설교)
어떤 율법사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를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영생은 무엇을 해야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받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얻는지를 묻자, 믿음의 열매인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요한사도는 요한일서에서 믿음의 열매를 사랑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하나님 사랑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는 사랑이고, 이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 율법사가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드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60m, 여리고는 해저250m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약 23km 산길을 걸어 내려가면 여리고입니다.
그 길은 인적이 드물어 강도들이 자주 출현하곤 했습니다.
강도가 그곳을 노렸던 이유는 여리고는 평지이고, 또 비가 많고 땅이 비옥하여 많은 곡식을 생산했고, 그 곡식을 예루살렘을 갖고 가서 팔고 내려올 때 현금을 소지하였기 때문에, 그 돈을 노리는 강도가 많았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노리던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온 갖 힘을 쓰다 매를 맞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가진 것 다 빼앗겼습니다.
그 때 강도만난 자 옆으로 제사장이 지나갔습니다. 제사장은 보았지만 피하여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레위 사람도 지나가면서 보았지만 못 본체 하고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자를 보고 달려가서 자기에게 있는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에 부어 응급처치를 하고, 그리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게 합니다. 그리고 데나리온 둘을 주고 비용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그 추가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37절에“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합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임과 동시에 오고 오는 모든 예수 믿고 제자된 저와 여러분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도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자를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한 사마리아인 처럼 하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요?
첫째,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야기에 등장 인물인 강도만난 자는 유대인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이유는 제사장도 유대인, 레위인도 유대인, 강도 만난 자도 유대인, 딱 한 사람, 강도만나 자를 도운 그 한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인이라고 특별 언급을 한 것입니다. 만약 강도만난 자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대해 사마라인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다른 종족이라는 것을 언급 했을 것입니다. 하지 만 하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는 유대인임이 틀림없습니다. 사마라인인이 유대인을 도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은 사마리인들을 상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를 지날 때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 때 요4:9절에“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상종치 않는 이유는 오래전에 유대인들이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유대인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이방인과 혼열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 중에 어느 한쪽이 이방인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자들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개 취급하며 상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 올라가는 길목에 집을 짓고 모여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사마리아인으로 불렀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사마라인은 영원한 이방인입니다.
이 상황을 오늘에 적용하면, 믿는 자와 믿지 않로 볼 수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자와 교회 다니지 않는 자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믿는 자들은 교회 다니지 않는 믿지 않는 자를 영원한 이방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자가 교회 밖에 있는 자로부터 도움을 받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교회 다니는 자도 교회 다니지 않는 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만 구제할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구제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회는 그동안 교회 밖을 처다 보지 못했습니다.
교회 밖에 이웃에 대해 눈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언론을 통해서 들려오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웃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교회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교회 밖에 어려운 이웃을 봇 본체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선한 사마리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 구제부를 선한 사마리아 선교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저 산속에 있는 필리핀 망안족을 돕는 만큼이나 지역 사회에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돕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교란 말을 썼습니다. 망얀선교나, 선한 사마리아 선교나 어려운 이웃을 찾아 돕고, 긍극적으로 그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목적은 같은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선교는
둘째,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역입니다.
30절에“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고 합니다.
강도 만난 자는 거의 죽은 상태였습니다.
거의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돕는 사역이 선한 사마리아인 사역이고 보면, 선한 사마리아 선교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매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역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에 비유하면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돕는 것이고, 암으로 말하면 초기를 돕는 것이 아닌 말기 환자를 돕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복지 사각 지대에 처한 매우 심각한 위기의 상황에 처한 분들이 있습니다.
실지 사회복지과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말에 의하면 복지를 받지 못하는 매우 어려운 이웃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복지과에 문의하면 그런 분들을 소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 대현의 성도들이 사는 가까운 이웃속에 그런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평소에 마음으로 매우 안타까와하며 무언가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막상 도우려고 하니 어떻게 도와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빈손으로 도울 수도 없고 그래서 마음은 있어도 돕지 못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적극적으로 교회에 추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한 사마리 선교회에 신청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신청서가 뒤 헌금대에 비취가 되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작성하여 헌금함에 넣거나, 본 교회 교역자, 당회원, 혹은 선한 사마리 도우미인 안수집사와 권사님들 중에 어느 한분에게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오늘 오후에 조직될 선한 사마리 선교부에 접수가 되게 되고, 접수가 되면 선한 사마리 도우미가 연락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저희 교회 새가족이 교회를 등록하면 새가족 섬김이가 옆에서 교회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처럼 말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도우미가 필요한 것은 오늘 성경 본문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만난 자를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주막 주인에게 돌봄을 요청하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주막 주인이 도우미가 되어 강도만난 자를 돕습니다. 바로 주막 주인처럼 선한 사마리안이 된 우리 대현 성도들을 돕는 사람들이 바로 도우미들인 것입니다.
저희 교회 모든 안수집사님들, 협동안수집사님들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모든 권사님들이 하게 도리 것입니다. 도우미들을 안수집사, 권사로 삼은 이유는 행6장에 초대 교회 안에 구제의 대상자를 돕도록 뽑은 직분이 바로 7명의 안수 집사들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후에 교회는 권사의 직분을 두게 되어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도우미들이 신청하신 본 교회 선한 사마리아 성도 한명 한명에게 배정되어 도울 것입니다. 그 어려운 이웃의 사정을 함께 나누고, 함께 도울 방법을 찾고,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 선교부에 보고를 하고,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 선교회의 관심과 도움 속에 돕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은 더 적극적으로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매월 둘째주 오후 예배후는 선한 사마리아 선교부 모임을 갖고 한달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며, 현장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 보다 더 나은 방도를 마련하고, 그리고 온 교우들과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하여 그 다음 셋째 주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잠시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가 어려운 이웃을 어떻게 돕고 있는지를 온 교우들이 알게 할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선교는
셋째,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고, 추후 한번 더 돕는 사역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34절에“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고 합니다.
거의 죽게 사람을 만나게 되면, 먼저 취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인은 자기에게 있는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는 응급처치를 하고, 자기 짐승에 태워 안전한 장소인 주막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최근에 대전에서 택시를 몰던 한 택시기사가 운행 중 갑자기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습니다. 당시 택시 안에 있던 탑승객이 119에 전화를 걸어 응급조치를 취했더라면, 그분이 살 수 있는 골든타임을 잃지 않았을 텐데 , 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일본 골프 여행 간다고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언론에 보도가 되었고, 국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심지어 선한 사마리아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만나게 되면, 현장에서 내가 조치할 수 있는 일은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라 배후에 대현교회 사마리아 선교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돕도록 지원하는 팀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보다 더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어려운 이웃을 못본체 하는 것을 용서치 않겠다고 하십니다.
신22:1-4절에“네 형제의 소나 양이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그것들을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또는 네가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려 줄지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형제가 잃어버린 어떤 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다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 그것들을 일으킬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못 본체 하지 말고 반드시 도우라고 합니다.
소나 나귀가 넘어져도 못 본체 하지 말고 도와 일으키라고 했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이 쓰러져 죽어 가는데 못 본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28:27절에“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선한 사마리아 선교부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 35절에“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선한 사마리아인은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었습니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하루 노동자의 품삯입니다. 요즘 남자분의 하루 일당을 보면, 기술의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도, 평균 10만원 정도로 잡으면 될 것입니다. 두 데니라온이면 20만원입니다. 최대 20만원까지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35절하반절에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비용이 더 들면 추후 갚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추후 도움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1회게 걸쳐 다시 한번 도움을 드리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니 처음에 20만원, 추후 다시 한번 20만원까지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복지 공무원분들의 말을 들으면 생각 보다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에게 돈을 주는 것 보다 필요한 물품을 사주라고 말합니다. 돈을 주면 별로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나 필요한 물품을 사드리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이제 곧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20만원이면 연탄 400장을 사 드릴 수 있습니다.
쌀로 하면 한가마니 이상을 사 드릴 수 있습니다.
필요한 물품을 요긴하게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의 어머님이 부산에 처음 내려가 사실 때 쌀이 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쌀 살돈이 없어 쌀집에 가서 살 두 대박만 외상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쌀 주인집 아저씩 아무 말도 안하고 두 대박을 대어 담아 주더랍니다.
어머니가 열심히 일해서 그 두 대박 값을 갚고, 그리고 그 동네를 떠나 다른데 이사갈때까지 그 쌀집만 단골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그 때 고마워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힘들 때, 쌀 두 대박도 고마운데, 쌀 한가마니를 갖다 드린다는 것은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연탄 400장이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도우면 좋겠지만 선한 사마리아 선교는 돕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응급조치로 돕는 것이기에, 그리고 한정된 자원으로 보다 더 응급조치가 필요한 분에게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부득불 두 번으로 제한을 두려는 것입니다.
요즈음 큰 병원에서는 환자를 오래 두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고 난 뒤에 조금 있다가 반강제적으로 퇴원시킵니다.
그리고 가까운 다른 병원에 가서 회복의 시간을 가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응급 환자를 받아 수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선교회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을 하게 되면 자원이 문제입니다.
감사하게도, 몇 주전에 저희 교회 한분이 지역 사회를 위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 지역 사회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1500만원을 헌금하셨습니다. 저희교회 남은 구제비와 함께 1500만원을 가지고 일단 선한 사마리아 선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삭줍기 헌금의 이름을 바꾸오 금주부터 “선한 사마리아 선교헌금”이란 이름으로 헌금 하고자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선교 헌금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물질중에 1%를 매월 드렸으면 합니다.
50만원을 버는 분은 1% 월 5천원, 100만원은 월1만원, 300만원을 버시는 분은 월 3만원, 하나님이 주시는 수입의 1%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었으면 합니다.
사회복지관에 있는 직원 한분이 동네에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과 보조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는데, 화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엄마와 딸이 있는 가난한 가정에서 동전꾸러미를 받았습니다. 그 화상 입은 여인은 어려서 집에 화제가나 모든 식구가 죽고, 아버지와 자기 둘만 살아남았는데, 입은 화상으로 온 몸이 흉하게 변한 자신을 아버지가 매일 때렸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부량자 시설로 가서 살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그곳에서 시각장애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여 딸을 하나 낳았으나 행복도 잠시, 남편은 얼마 후 앓아 죽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철역에서 구걸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일 뿐이었는데, 그러던 중 어느 의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무료로 성형 수술을 받았으나, 얼굴은 나아지지 않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사회복지 직원이 방문하여 그런 사정을 이야기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직원이 여러말로 위로하고 돌아나오는데, 그녀가 장롱 깊숙이에서 뭔가를 꺼내 직원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00원짜리 동전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였습니다. 100원짜리 동전이 들어 있는 봉지를 주면서 그녀는 "혼자 약속한 게 있어요. 전철역에서 구걸하면서 1000원짜리가 들어오면 생활비로 쓰고, 500원짜리가 들어오면 딸아이의 눈 수술비로 저축하고, 그리고 100원짜리가 들어오면 나보다 더 어려운 노인 분들을 위해 드리기로요. 좋은데 써 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비닐봉지 안에는 1006개의 100원짜리 동전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직원은 자기도 어려우면서 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이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너무나도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도 저와 여러분들이 이 여인처럼 한다면 깊은 감동을 받으실 것입니다.
나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1%를 드린다면 주님이 얼마나 감동을 받으시겠습니까?
잠19:17절에“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에게 꾸어준다는 것은 갚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1%의 구제 헌금은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갚아 주시되 눅6: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갚아 주신다고 하십니다. 1%가 100배로, 1000배, 만배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프랑스 토울의 주교였던 마르티누스(Martinus, AD.316-397년)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그에게 한 거지가 찾아왔습니다. 추위에 떨면서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 때 마르티누스에게는 한 푼의 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거지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고 있던 헌 외투를 벗어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그 날밤 마르티누스는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셨는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등에 자기가 낮에 거지에게 주었던 외투가 걸쳐져 있었습니다. 한 천사가 주님께 묻는 소리를 꿈속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왜 그런 보잘 것 없는 외투를 걸치고 계십니까? 누가 걸쳐 주었습니까?" 하고 천사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기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종 마르티누스가 내게 준 것이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마르티누스는 이와같은 꿈을 꾸고 나서 더욱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마25장에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서 주님이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인들이 언제 우리가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물으니 마25:40절에“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또 그렇게 하지 않는 자들에게 대해 마25:45절에“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 선교는 어떻게 보며 어려운 이웃을 통해 주님을 대접하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매우 귀한 사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진홍 목사님이 청계천 빈민 선교를 시작할 때 처마 밑에 울고 있는 어린 소녀의 눈물에서 주님을 보고 그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변에 울고 있는 어려운 이웃 속에 있습니다. 앞으로 대현의 선한 사마리 선교는 어려운 이웃 속에 계시는 주님을 섬기는 선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 사역에 모든 교우들이 참여하실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한사마리아선교